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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깨달음이란 - 무묘앙 에오☎

작성자
아스카
작성일
2017.12.02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316
내용

나는 깨달음을 좋은 상태라고 인식하진 않는다. 또 모든 생명이 마지막엔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 점에서 나는 과거 그 어떤 조사들과도 전혀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



역사상의 조사들은 누구나 깨달음의 상태를 절대 행복으로서 칭송하고, 그것을 위한 무언가를 세상에 행해왔다.


그러나 내 관찰에 따르면, 그것은 결코 특정한 누구에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며, 또 단순히 노력을 많이 한다고 해서 일어나는 것도 아니며, 인류의 극히 일부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게다가 깨달음의 결과가 타인이나 사회에 무언가 평화적이고 창조적인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할 수도 없다.


그것은 본인 단 한 사람의 안락한 죽음을 보증할 뿐이다.



깨달음은 그것이 진짜로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될 때에 자발적으로 일어난다.


또 그것은 일반 사람들이나 명상가에게는 전혀 불필요한 사건이다. 그것은 일반인들이 "이리 오세요"라고 손짓할 수 있는 바람직한 상태가 아니다.


나는 누구보다 그 점을 통감(痛感)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들 같은 특수한 심리적 병마에 시달리고 있는 자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마취와도 같은 것이다.



분명히 그것은 고요함과 편안함으로 채워져 있지만 그로 인해 인간이 치러야 할 댓가는 너무나도 값비싸다.


그것은 <혼을 버리는> 일일 수도 있으며, 감정을 가진 생물에게는 참기 어려운 것이다.



깨달음을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은 수행승도 아니요, 종교인도 아니요, 사랑과 행복을 찾는 인간도 아니요, 명상가도 아니요, 자기 포기라는 자기 만족을 위해, 사람들에게 헌신하고자 하는 자도 아니요, 예술가도 아니요, 테라피스트도 아니다.


그것이 정말로 필요한 것은 오직 두 종류의 인간들로서, 하나는 <진실을 지나치게 추구한 광인들>이고, 다른 하나는 <타협하지 않는 철학자>들이다.



- <반역의 우주> 중에서 -





그 때, 그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


그 때, 할 것 같았던 무엇인가는 거기에 없었다.


그렇지 않고, 아마,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는 전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것뿐일 것.


그 정도로까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었던 순간은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순간,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완전히 미지의 무엇인가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 자신은 전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데 그것은 계속해서 일어났다.



그것은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단지 <일어나는> 일만 있을 뿐이었고, 사람이 거기로 향해 가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것은 향하는 일을 그만두었을 때에만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대오(大悟)의 동기, 그 순간, 그 후, 거기에 만약 결정적이고 보편적인 요인이 있다면, 그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심신이 다함께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


그러나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노력하여> 무위가 되는 것은, 그 자체 가운데에 이미 기대가 있다. 이미 동기가 있다.


그러므로 그러한 기대를 가진 상태로서의 무위는 소용이 없다.

 



좌선이나 명상이란 본질적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철저하게 아무 것도 하지 말 것. 대오(大悟)는 그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그 자체밖에는 없다."



철저하게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앉아 있든지 잠들라.



의식에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기. 주의도 하지 않기.


있는 그대로 있으려고도 하지 말것.


아무 것도 절대 하지 않을 것.


움직이지 않고, 거기서 죽을 각오로 있으라.


조금이라도 마음이나 의식이나 주의를 <자신으로부터> 움직이지 말 것.



<과연 이것은 자기 의식의 움직임인가, 자연적 의식의 움직임인가?>와 같이 헤매서는 안 된다.


만약 혼돈스러우면 그대로 내버려 두라. 그 사이에 그것들은 사라질테니.


어찌되었건 당신이 아둥바둥하는 것이, 가장 결과가 나쁘다.

 


당신이 만약 무엇인가로 아둥바둥하면, 그것은 다음을 의미한다.


<그때 당신은 반드시 무언가를 이상적인 목표로 삼고 있을> 것이다.


그 이상적인 당신과 현상의 당신 사이에 거리가 있기 때문에, 당신은 어떻게든 <하려>고 덤벼든다.


그렇게 하는 수행에 끝은 없다. 그것은 끝없는 헛수고일 뿐.



그러므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는 당신을 죽여버리는 것이, 바로 나의 방법이다.


일체의 작위적(作爲的) 좌선도 소용없다. 그 어떤 방편도 소용없다.



아무 것도 해서는 안 된다. 앉을 때는 좌선조차 해서는 안 된다.


이제부터 무엇인가를 <자신이 행한다>라고 하는 마음가짐을 약간이라도 가지고 앉아서는 안 된다.


단지 <잠시 휴식>한다고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앉아라.



그래! 그 느슨한 자세, 그것이야말로 정말 필요한 좌법이다.


그것이 무위 자연(無爲自然)의 좌법이다. 그것이야말로, 당신이 뭔가 <저지르려고> 하는 마음이 사라진, 그 흐리멍덩하게 앉는 방법이야말로, 내가 당신에게 필요하다고 하는 것.


왜냐하면 그 <느슨함> 가운데에는, <뭔가를 위하여 앉아주자>라고 하는 당신이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나 인류의 목표, 달성되어야 할 이상이며, 깨달음을 위한 좌선이라는 등, 그러한 것들(즉 일체의 사고)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으면, 대오(大悟)가 일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약 좌선자들이 이후로, 앉게 되면 그것은 정말 깊이, 구하지 않고, 단지 <쉬는> 일이라고 마음 먹도록.


좌선이 즐겁고, 앉는 일이 빙긋이 웃을 정도로 즐겁지 않으면 소용없다.


그것은 편안해야 하고, 거기에는 어떤 터득도 필요 없다.



쓸데없는 일을 첨가해서는 안 된다. 호흡에 주의하지 말고, 지금의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는 기백이나 주의도 필요없다.


그런 것은 하지말라고 내가 말하는 것은 당신의 내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건 의미가 없다. 단순한 허망함이다>.



그러면 그 단순히 꾸밈없는 허망한 상태로 왜 있을 수 없는 것일까?


그건 모두 당신이 목적을 달성하고픈 욕구로 인해 차분히 가라앉지 못한 까닭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공부도 하지 않고 편안히 앉는 것에 당신이 지겨움을 느낀다면, 당신은 전혀 <의식이 앉아 있지 않다>는 뜻이 된다.




깨달음이란,


그것은 존재나 무로부터 당신에게 보내지는 선물이다.


그것은 당신의 창작물(創作物)이 아니다. 당신이 주의를 기울인 노력의 결정이 아니다.


당신이 아무 것도 구하지 않고, 아무 것도 하려고 하지 않고, 일체의 선(禪)의 목표도, 그리고 세속의 목표도, 모두 무시하고, 무위 가운데 안착하는 것.


그것이 심리적인 차원에 한정시킨다면, 실질적으로는 당신의 전면적인 죽음이다.



우리들은 세상에서 달성하거나, 희망을 가질 것을 주입받아 왔다.


하지만, 그것을 전부 떨쳐내지 않는다면, 무욕(無慾)의 진공(眞空)의 정지점은 실현되지 않는다.



따라서, 마음으로부터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는 정적 속에 앉아, 단지 편안히 앉아서, 기다림 없이, 기대하지 않고, 편안히 느슨해져, 유유자적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경우뿐이다.


그것은 거의 당신이 죽어있는 것과 같은 것.


공포나, 아픔이나 위험이나 병환 속에서의 죽음이 아니라, 정적과 무위 가운데서의 죽음과 같은 편안한 좌선(坐禪)이 필요하다.



이러한 철저히 무의미한 좌선이야말로, 완전히 무의미한 깨달음을 가능하게 한다.


만약 깨달음에 의미나 의의가 있다면, 반드시 그것은 또 다른 고뇌나 혼란을 당신에게 만들고, 세상에 만들어낸다.



완전히 아무 것도 아닌 것이 깨달음의 꾸밈없는 아름다움이다.


거기에는 불법이다 따위의 지저분한 말은 필요 없다.



- <폐허의 붓다> 중에서 -




VISION


< 이번 생 동안 많은 깨달은 스승들의 가르침들을 읽고 그 핵심을 이해했으며, 그들이 동일한 가르침과 핵심을 가르쳐주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이 가르침들의 핵심을 가능한 알기 쉽게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이해시키기 위해서 많은 글을 써서 다른 이들과 나누고 있다.저서로는 <알기 쉬운 깨달음>(전자책), <소설 개벽>(전자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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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된 시간은 존재하고 이용된 시간은 생명이다.(영) 모범은 훈화보다 유효하다.(영국속담) 말에 혼동되지 말며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려고 생각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추분이 살펴보아야 한다.(몰리에르) 일을 몰고 가라. 그렇지 않으면 일이 너를 몰고 갈 것이다.(프랭클린) 지나간 슬픔에 새 눈물을 낭비하지 말라. 인내하라.경험하라.조심하라. 그리고 희망을 가져라.(조셉 에디슨) "맹세는 말에 지나지 않고 나는 나 자신을 빼 놓고는 모두 안다.(비용) 참된 삶을 맛보지 못한 자만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다.(제이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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