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국민투표를 통해 EU탈퇴를 선언했다. 집권 보수당의 캐머런 총리는 물론 야당인 노동당의 주요 정치인이 모두 EU잔류 캠페인을 펼친 것을 고려하면 이번에 영국인들은 주류 정치권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보수당 지지자들의 2/3가 탈퇴에 투표하면서 캐머런 총리도 상황이 수습되는대로 사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결정은 유럽 대륙을 흔들고 미국에 영향을 끼치면서 서구의 정치지형을 바꿀 것이 분명하다.
투표 당일까지도 잔류 가능성이 우세하게 점쳐지는 바람에 탈퇴 결정이 끼친 금융시장에 대한 여파는 더 컸다. 국민투표가 만들어낸 쇼크에 전세계 증시에서는 만 하루만에 2천440조원이 증발했을 정도다. 아시아와 유럽, 미국 증시는 차례대로 대규모로 폭락했고,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로 금값과 엔화, 주요 선진국의 국채가격이 급등했다. 반면 유가는 하락했다. 이처럼 투자자들은 영국의 EU탈퇴가 세계경제 침체로 이어질 것이라고 봤다. IMF등도 이번 결정으로 영국의 국내총생산이 감소하고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어두운 예측을 이미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이번 국민투표가 침체한 세계경제에 치명타가 되어서 세계가 더 깊은 불황속으로 빠져들 것이라는 전망은 다소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 당장 영국이 EU에서 즉시 탈퇴하는 결과가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또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 등이 준비된 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의 패닉은 특유의 ‘호들갑’에 가까울 것이라는 이야기다.
진정한 문제는 다른 데 있다. 국민투표 결과는 탈퇴를 주장해 온 사람들조차 놀랄 정도로 큰 차이를 보였다. 여론조사 기관이 주요 언론들이 모두 잔류를 점치는 가운데에서도 탈퇴 측은 잔류 측을 4%p 가깝게 압도했다. 캐머런 총리를 비롯해 잔류 측 지도자들은 브렉시트가 현실화될 경우 영국에 경제적 재앙이 닥칠 것이라며 공포감을 조성했었다. 그러나 영국인들은 이를 ‘감수해도 좋다’고 보았다. 어떤 의미에선 지금이 충분히 나쁘니 더 나빠져도 좋다고 본 셈이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영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양적완화와 재정긴축을 통해 가까스로 금융붕괴를 막았다. 하지만 대중들의 삶은 극도의 불안정을 겪어야했고, 이 과정에서 불평등은 그 어느 때보다 심화됐다. 이번에 탈퇴 진영의 캠페인이 이민자들로 인해 NHS등 복지 제도가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한 것은 원인은 잘못된 것이지만 결과는 누구나 느끼고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불평등과 불안정은 대중의 반란을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영국이 EU탈퇴를 결정한 것은 전적으로 영국인들의 권한이며, 이는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EU탈퇴가 영국의 민중이 겪고 있는 문제의 근본적 해법이 될 수는 없다.